서른, 다시 심플하게 산다
서른 즈음되었다.
*나이를 계산하는 방식이 이리저리 바뀌는 바람에 정확하게 서른은 아직 많이 남았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어릴 때 상상하던 서른 살의 나는 꽤나 멋진 어른이 되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인생을 30이라고 본다면
20까지는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방식과
청소년기에 배우고 경험해야 하는 일들을 수동적으로 따라갔다.
21부터 26 정도까지는 갑자기 찾아온 자유라는 것에 매혹되어서
정신없이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고집도 부렸다.
27부터 최근까지는 드디어 자유의 무게를 느끼기도 하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단단하게 만들어 나갈지 고민하기도 하면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다.
많이 서툴러서 모든 것을 동시에 잘하지는 못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인데
내면을 가꾸고 정돈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부의 일이 벅차다 보니 계속 내 속은 망가지고 있었다.
지난 5월 아주 어렵고 홀가분하게
지금까지 하던 일을 일단락 지었다.
2018년부터 시작해서 정말 불나방처럼 매 순간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다 보니
꽉 찬 6년의 시간이 흘렀다.
6년 동안 정말 멋지고 행복했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는 계획 없이 시작한 이 방향을 방치한다면
언젠가는 큰코다치리라는 걱정이 자라고 있었다.
그 걱정이 더욱 커지기 전에
다시 0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30까지의 시간을 잘 정리해 보고
앞으로의 시간을 잘 가꾸고 싶다.
무엇부터 해볼까?
가장 처음 해야 하는 일은 지금까지의 시간을 정리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나의 경험이 나에게 남긴 것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나를 둘러싼 관계
그리고 나라는 사람 그 자체가 어떤 상태이고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지 아주 명료하게 파악하고 싶다.
청소할 때 걸레가 더러우면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여전히 더럽다.
깨끗하게 청소하려면 걸레를 깨끗하게 다시 빨아오거나
새 걸레를 꺼내야 한다.
아깝다고 귀찮다고 더러운 걸레를 손에 쥐고 있을게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다시 시작하는 게 어쩌면 가장 빨리 청소를 끝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자유로웠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돌아보니
대학시절이었다.
나에게 대학생활은 독립을 하고 자취를 하면서
온전히 내 공간과 내 물건에 대한 개념 그리고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노동이 무엇인지 천천히 배워가던 시절이었다.
15년쯤이었을까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집 근처의 서점에서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라는 책을 처음 보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이런 유의 책은 잘 읽지 않았던 대학생인데
조금 색다른 선택이긴 했다. 아마 그때의 나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져서 고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자취를 하면서 물건을 고르는 기준이나 좋은 물건에 대한 고민이 없다 보니
내 공간이 많은 물건으로 꽉꽉 채워지고 있던 찰나였다.
이 책을 읽고 몸, 공간, 관계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 방향이 나라는 사람과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인기가 급상승했던 미니멀라이프가 내가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처음으로 공간과 물건을 덜어내고 정리해 보기 시작했고
블로그에 기록도 해보았다.
오랜만에 다시 들어가 보니 또 그때 생각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바쁜 일상에서 완전히 까먹고 있었던 나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이렇게 다시 꺼내보니 그때의 내 시간이 한 번 더 반짝거리게 느껴진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선물해 준 이불 커버 세트를 정리했던 날도 있고
가득 모아둔 상품택을 버린 날에 동전 모으겠다고 한 것도 지금 보니 웃기고
이렇게 다양한 물건을 간직하고 살펴보고
골라내고 정리했던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선택의 기준을 만들어 주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선택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 든다.
무언가를 사는 건 쉽다. 가지는 것도 쉽다.
정신을 조금만 놓아도 내 손에는
가방에는 집에는 물건이 가득 쌓인다.
정말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과 쓸모 있는 것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
불필요한 물건과 관계로 한정된 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것.
아낀 에너지를 모아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 자신을 위해서
충분히 행복하게 사는 것.
앞으로 내가 잘해야 하는 숙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열심히 밖에서 치열하게 사는 동안
돌보지 못한 나의 내면과 집을 잘 가꾸는 것으로 남은 24년도를 보내려고 한다.
다시 한번 심플하게 산다를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어 본다.
정리를 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을 세우려면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잘 알아야 한다.
나에게 40대라는 시간도 감사하게 주어진다면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라
나 자신 그 자체로 설명되는 40대가 되어보고 싶다.
티스토리에 사사로운 과정을 기록해두려고 한다.
이 기록은 나중에 살펴보기 위함도 있겠지만
무형의 내 생각을 유형의 텍스트로 만드는 과정에서
잘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나에게 늘 어려운 일이다.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
서툴지만 해보고 싶은 일이다.
잘 정리되어 가는 생각들을 보면서
끝까지 해내는 원동력으로 삼아야겠다.
simple 심플 : 단순한 간단한
grit 그릿 : 끈질긴 투지